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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욱 作 [포기하는 용기] - 2장. 나는 누구로 사는가? 中 '불안'에 대하여

by molang-molly 2024. 9. 8.

1. 작가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에 잠깐 작가에 대해 설명 하자면, 정신분석가 이승욱 박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프로이트 정신분석을 전공했고, 오클랜드 북부 정신병전문치료센터에서 정신분석가이자 심리치료실장으로 10년간 근무하신 분이다. 귀국후 팟캐스트 <이승욱의 공공상담소>를 진행했고, <닛부타의 숲 정신분석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상처 떠나보내기], [포기하는 용기], [소년], [천일의 눈맞춤] 등이 있다.

 이 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내가 대학생 때 였는데, 그때 심리학 관련 과목의 수업을 진행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교수는 아니었고 아마 시간강사로 수업을 맡으셨던 것 같은데, 교수님이라는 호칭보다 '사이먼'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수업 진행 방식도 당시 일반적이었던 강의형식이 아닌 토론 및 발표(외국에서 흔히 채택했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아마 막 귀국하시고 잠깐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것이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수업에 많은 학생들이 있지는 않았기에 몇 개의 조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특히 사이먼(습관적으로 교수님!!이라고 몇 번 불렀다ㅎ)에게 자유롭게 질문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등 다른 강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업 시간이 재미있고 유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에는 그 때 그 수업을 해 주셨던 분이었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책을 읽고, 작가 사진을 보고는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그리고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았다ㅋㅋ) 앞으로 따로 포스팅 할 예정이긴 한데 [상처 떠나보내기] 및 [천일의 눈맞춤]은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특히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 예비 부모라면 [천일의 눈맞춤]은 내 뇌피셜 필독서에 포함된다. 

 

 

2. 책을 읽게 된 계기

 사실 이 책을 읽은 것은 꽤 오래 전이다. 이 책의 초판 인쇄가 2013년이었는데, 당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포기하는 데에 용기가 필요하다고?'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 난다. 요즘이야 포기하는 것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알지만 그 때는 나도 어렸었고, 도전하는 것에만 용기가 필요한 줄 아는 때였다. 그리고 처음 읽을 당시에도 내 고정관념과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사회적 통념이 통째로 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최근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일을 쉬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피폐해진 내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오늘 나누고 싶은 부분은 책의 2장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장에 대한 간략한 요약과 생각할 거리들만 적겠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을 부디 꼭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작가님이 다년간 상담을 하며 깨달은 것들과 내담자들과 함께 했던 치유의 여정이 책에 녹아있는데, 그걸 읽으며 스스로도 치유되는 경험을 꼭 해보시기를 바란다. 

 

3. 책의 제 2장. 나는 누구로 사는가?

1) 누군가에게 치명적 존재가 되고 싶다

 사람들은 누구나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가족 구성원에게는 사랑 받고 싶고, 회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고 싶으며,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병적으로 가는 경우(즉, 그 감정이 지나쳐 일상생활에 장애가 되는 경우)는 경계해야 한다. 책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누군가에게 "미친 존재감"이 되고 싶은 사람, 즉 타인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심리의 근원에는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 불안의 근원은 '자신이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 될까봐' 이다. 즉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지 못할 때 생기는 불안이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계속 확인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확인'의 기준이 '타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타인이 확인해 주는 존재가치는 결국 '타인'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므로 끊임없이 타인을 괴롭히게 된다.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타인을 통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을 통해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용기있게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2) 나르시스트, 불안에 중독된 사람들

 위에서 설명한 '불안'과 그 불안에 잡아먹혀, 권력과 영향력을 갈망하며 자신의 주변을 추종자 내지 조력자로 채우며 끊임 없이 타인을 볼모로 잡는 이들이 바로 '나르시스트'들이라고 한다. 얼핏 보기에 이들은 자신감에 차 있고, 스스로를 너무 사랑하며, 스스로에 도취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잡은 강력한 불안이 바로 '사실은 자신이 약하고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밝혀질까봐 두려워서'라고 한다. 실은 자신이 형편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인데,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불안의 크기만큼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돈과 권력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어떻게든 잘나 보이려고 애를 쓴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SNS에 중독된 현대인들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나 이만큼 잘 먹고 잘 산다'를 과시하고 뽐내는 공간에서 그들은 '좋아요'갯수에 목숨 걸지 않는가. 그들이 바로 나르시스트들의 표본인 것 같다.) 책의 말을 빌리자면 이들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타인을 제물로 삼는다'라고 한다. 또한 '자기 안의 결핍을 마주할 용기도 없고, 자신을 깍아내리는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 찬 텅 빈 내면을 들여다볼 자신도 없는 사람들이 실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이상적 자신"을 허상으로 삼아 그것을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거기에 부함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런 나르시스트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의 돈과 권력을 믿고, 그것들을 주변에 조금씩 나누어주며 사람들을 붙잡아 두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주변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된 카리스마에 현혹되었거나 의탁할 곳을 찾는 심약한 성격의 소유자들, 내지는 이런 나르시스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나르시스트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며, 만일 그러지 못할 경우 불같이 화를 낸다고 한다. 또한 만약에라도 남들이 자신을 욕하는 것을 알게 될 경우, 그 모든 것을 자신에 대한 시기&질투로 치부해버린다고 한다(그러지 않으면 너무 화가나고 불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불안'만큼이나 이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강력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병들고 죽게 되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한다.

 

3) 그(나르시스트)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우리 주변에 이런 사람이 없다면 정말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우주에 존재하는 또*이 질량 보존 법칙에 따라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럼 이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특히나 이런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워커홀릭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사로 만날 가능 성이 높은데,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책에서는 먼저, '절대로 만만하게 보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핵심은 그 사람보다 '더 지독한 면모'를 하나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고 한다. 가령 자격증이 더 많다든지, 학위가 더 높다든지, 리더심이 더 뛰어나다는지 하는 것 말이다. 이런 것이 안 된다면 '아예 침묵'하라고 조언한다(주눅든 침묵이 아닌 카리스마 있는, 속을 알 수 없는 침묵을 말한다.). 그 이유를 책에서는, '나르시스트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두 번째는, 시킨다고 곧이 곧대로 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사라면 기본적인 업무는 철저하게 해 놓되, 그 이상의 것이나 업무를 벗어나는 일을 시킨다면 칼같이 자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나르시스트들은 논리적으로 공격을 해올 텐데, 여기서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면 다시 감정에 호소하며 상대방이 거절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게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에도 정공법으로 돌파하라고 한다. 즉 "그렇게 말씀하시니 안 해드리면 제가 죄책감이 들 것 같은데, 그래도 저는 못 하겠습니다. 설마 이것 가지고 저를 죄인 취급하실 건 아니죠?"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나의 불안을 아는 것'이라고 한다. 주변에 나르시스트가 있을 때 손절할 수 있는 관계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때, 그 사람과 관계를 이어가야 할 명확한 이유가 무엇인지, 거기에 앞서 내가 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콩고물'(즉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무엇이 불안해서 그들 옆에 붙어 있는지),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input이 어느 정도면 적정한지 등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그래야 그 선을 넘어섰을 때 단호히 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결정이 되었건 그들(나르시스트들)의 욕망이 나를 삼키게 하지도 말고, 나의 욕망이 나를 삼키게 하지도 말아야 한는 것이다.

 

 

4. 마무리

 살다 보면 별별 경험을 하게 된다. 정말 간절한 순간에 결정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내가 한 실수가 아닌데도 내가 뒤집어 쓰기도 하며, 무능하고 욕심 많은 상사 때문에 애를 먹기도 하고, 뜻하지 않은 선물과 위로에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을 할 때 꼭 따라오는 것이 인간 관계이다. 한 때는 나도 사람간의 관계에 너무 질려서 정말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철저하게 고립된 채로 혼자 살아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도 되는 법이라고, 정말 뭣 같은 사람도 만났지만, 보살의 현신인가.. 싶은 사람들도 만나면서 굳이 인간관계에 크게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을 이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감사하고 나도 더 베풀고자 하면 되고, 아닌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단호히 거절하고 나를 보호하면 될 일이다. 거기에 어리석게 화를 내고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그 에너지를 아꼈다가 나를 위한 시간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일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좋은 인연이 두루 함께하며, 혹시라도 안 좋은 인연(특히 나르시스트들)을 만나더라도 현명하게 대처할 때에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길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