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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힐링이다.(feat. 시판용 바질 화분 키트)

by molang-molly 2024. 9. 4.

오늘은 기존과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한다..

 

현재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쉬어가는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동안 해 오던 일을 그만 두고 쉰 기간이 1년을 넘어서면서 나란 사람의 존재 이유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실 일을 하는게 힘든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몸이 점점 망가져 가는 게 느껴지고, 정신마저 피폐해 지면서, 내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 내가 지금 모든 걸 그만두고 멈춰 서게 된 가장 큰 이유일 것 같다. 몸과 마음이 멍들기 시작하면 사람은 평소에 하지 않던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쉬는 동안 나의 생각도 내 의지와는 다르게 많이 부정적이고 어두워져 갔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천천히 변해가면서 나만 그걸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올해 초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4월, 매우 즉흥적으로 다이소에서 바질 화분 키트를 샀다. 뭐에 홀려 다이소를 들어갔는지도 모르겠고, 어쩌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식물칸에 발을 들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바질키트가 들려 있었고, 나는 키트 안내문에 적힌 대로 아주 정성스럽게 바질 씨앗을 심고 있었다.  키트라고 해 봐야 손바닥 만한 작은 화분에, 배양토 조금, 그리고 씨앗은 총 8알이 들어 있었고 조그만 팻말하나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씨앗을 뿌리면서도 얘가 자랄까..하고 반신반의했다. 8개 씨앗 중에 1~2개 자라면 잘 자라는 거 아닌가.. 하고 큰 기대 없이 심었다. 그리고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줄이야..) 8개의 씨앗 중에 무려 7개가 새싹을 틔우더니 무럭무럭 자랐다. 이렇게나 잘 자랄 줄 모르고 사진도 찍어 놓지 않았던 것이 조금 후회가 된다.. 그리고 오늘.. 바질들이 키가 너무 커서 분갈이를 해 줬다. 원래 7개 각각 새 집(화분ㅎㅎ)을 만들어 주려 했는데 파 내고 보니 뿌리들이 아주 자기들끼리 단단히 얽혀 있어 도저히 분리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통째로 그냥 큰 화분에다 옮겨 심었다.. 제대로 분갈이를 한 건지도 모르겠고, 저걸 나중에 어찌 다시 나누나.. 싶기도 한데, 그래도 애들이 잘 자라는 걸 보니 기분이 정말 너무 좋다. 

 

생각해 보면 내가 화분을 만졌던 건 중학교 때 선물로 받은 장미 화분을 키우려다 그 아이를 고이 하늘로 보낸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물 주는 주기를 맞추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분명 물 주는 주기를 들었는데, 학교 갔다와서 까먹고, 학원 갔다와서 까먹고, 자고 나면 다음날 아침 다시 학교 가기 바쁘고.. 결국 내 생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장미는 그렇게 말라 죽어갔다.. 나중에 아이가 시들고 나서야 놀라서 물을 줘 봤지만 장미는 살아나지 않았고 그렇게 화분을 보냈다. 그 때는 그저 한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나는 화분을 잘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self-image를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나는 화분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친구들과 대화에서 식물에 관한 주제가 나오면 그냥 "나는 식물들 다 죽여서 못키워"라고 말하고는 그저 친구들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점점 화분에 있는 흙과 돌들, 물주면 화분 받침에 고이는 흙탕물 등 이런 것들이 싫기만 했었다. 이런 내 과거 경험(trauma라면 일종의 trauma라고 할 수 도 있겠다)을 한 방에 치유해 준 것이 바로 올해 4월에 나에게 온 바질 화분이었다.

 

바질이 싹을 틔우는 걸 본 나는 평소에 즙을 짜 먹던 레몬 씨앗에 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바질을 심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레몬 씨앗도 파종하게 된다(그게 4월 19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음료를 사다 먹고 남은 플라스틱 컵이 여러 개 있었는데 아직 분리수거 전이어서 그 아이들을 다시 데려다 깨끗이 씻고 바닥에 구멍을 뚫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다이소에서(바질 이후로 내 애착가게가 되어버린 다이소였다.) 자갈과 배양토, 그리고 알비료를 사다가 레몬 씨앗을 심었다. 한 레몬에서 무려 13개의 씨앗이 나왔는데.. 쭉정이도 있었기에 한 컵에 6~7개씩 심었다. 어쩌피 쭉정이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이게 얼마나 잘못 된 생각인지는 레못 새싹이 고개를 내밀며 알게 되었다..). 레몬은 무려 100% 발아 했던 것이다. 분명 매우 작고 말라 비틀어졌다고 생각한 씨앗이었건만(사실 이런 씨앗은 그냥 '다른 씨앗들 크는 데에 비료나 되거라'하고 심은 것이었다.) 그 아이들까지 모두 싹을 틔운 것이었다. 그 때 나는 신기하면서도 자연의 생명력이 인간의 이해를 초월할 정도로 강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눈에는 약해 보였던 아이들도 결국 싹을 틔웠고, 지금은 그 싹 중 1개만 죽고 나머지는 모두 살아 어엿한 묘목이 되어가고 있다.

 

책장 하나를 비우고 식물의 집으로 만들어 봤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스스로가 많이 바뀐 것을 깨달았다. 식물을 보며 즐거워하고, 많이 웃고, 무엇보다 아이들 물 줄 생각에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려 노력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책장 하나를 정리해서 비우고, 그러면서 방을 청소하고, 비운 책장에 식물 생장등을 달았다.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면서 삶은 점점 규칙적으로 바뀌었고, 방을 청소하면서 주변 환경이 바뀌었고, 식물 생장등을 달면서 내 방이 더 환하게 밝아졌다. 식물들을 위한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내가 바뀌고 행복해 졌다. 

 

분갈이 한 바질과 키가 많이 큰 레모나무 새싹(?)들

 

고작 바질 화분 한 개. 어떻게 생각하면 참으로 작고 보잘것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내 모든 변화가 그 작은 바질 화분 하나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반려식물"이라는 단어가 생겼는지 비로소 이해 되는 부분이다. 식물로 인해 내가 성장하고 변화 했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단순히 식물을 더 잘 키우고자 했을 뿐인데, 이 아이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식물을 싫어하던 과거의 나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원래 삶이란 어느 방향으로 흐를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슬프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그 하나하나의 이벤트에 사로잡혀 현재를 보지 못하고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의 나를 흘려보내고, 새로운 나를 준비하는 데에는 바질 화분 하나처럼 아주 작은 계기가 필요할 뿐이다. 이 글을 읽게 될 모든 사람들이 그들만의 바질 화분을 만나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해 본다. 

 

 

P.S.

바질로 시작한 레이스에서 레몬을 거쳐 지금 또 하나 사고를 쳤다.

바로 애플망고 씨앗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선물로 들어온 애플망고가 참 맛있었는데, 이 아이는 또 유난히 씨앗이 크지 않은가..

도저히 버릴 수 없어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고 씨앗을 꺼내 발아시키려 환기 잘 되는 플라스틱 통에 넣어 놓았다.

만일 애플망고 씨앗이 싹이 트고 뿌리가 나온다면 이 아이들을 심어 또 한 번 포스팅을 해 보겠다.

(부디 씨앗들이 잘 자라서 다음 포스팅을 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 본다.)